[중국 한시 감상]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등관작루(登鸛雀樓) – 왕지환(王之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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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량선생

등관작루

중국의 문화 예술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항상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이 ‘한시(漢詩)’ 입니다.

한시는 시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감동을 주지만, 시에 얽힌 이야기와 배경 등을 같이 알고 감상하게 되면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시들은 그 시에 쓰인 문구들이 마치 하나의 고사성어처럼 전해져서 일상 중에 쓰이기도 하는데요, 오늘 말씀드릴 ‘등관작루(登鸛雀樓)’도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에게 많이 기억되고 있는 시 중에 하나 입니다.

그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및 해석

登鸛雀樓(등관작루) – 관작루에 올라

王之渙(왕지환)

白日依山盡 (백일의산진)
黄河入海流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 (욕궁천리목)
更上一層楼 (갱상일층루)

해는 산자락을 따라 기울어 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는데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어
다시 한 층 누각을 더 올라가네


등관작루(登鸛雀樓)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이 쓴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시입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을 오르는 웅대한 기개와 진취적인 기상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 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마음속에 품고 그 뜻을 꼭 이루고 싶다는 그런 호방함이 느껴집니다.

‘관작루’에 대하여

이 시에 등장하는 ‘관작루(鸛雀樓)’는 중국의 유명한 고대 누각중 하나입니다.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고대 역사 문화의 유명한 4대 누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다른 설은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봉래각)

개인적으로는 중국 여행 가게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관작루 인데요, 사진으로 보는 풍경도 멋있지만 실제로 한 층 더 올라가면서 느껴지는 풍광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네요.

관작루의 원래 위치는 산시성 푸주입니다.

남북조시대에 북주와 북제가 이 마을에서 군사대치상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북주의 장군 우문호는 방어를 위해 푸저우주(푸주) 서문 밖에 한 채의 높은 누각을 건축해 군사전망대로 삼았는데요, 항상 황새가 누각 위에 둥지를 틀어 머물며 보금자리로 삼았기 때문에 관작루라 불립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황하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역대 대단히 많은 문인이 관작루에 올라 옛날을 생각하며 감흥을 토로하고 시를 남겼습니다.

관작루는 전쟁으로 훼손되고, 황하의 물길이 바뀌는 등 여러 풍파를 거치면서 결국 소실되었는데요, 현재의 관작루는 당대의 높은 누각을 모방하여 1997년 12월 재건을 시작해 2002년 8월 새로 완공된 것입니다.

누각의 중앙에 왕지환의 청동주조물이 설치되어 있고, 1층에는 마오쩌둥 주석이 손수 쓴 <등관작루>가 걸려있습니다. (마오쩌둥 주석이 생전에 이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네요) 

‘왕지환’에 대하여

왕지환(王之涣)(688∼742)은 중국 당(唐)나라 시인으로. 자는 계릉(季陵)이며 산시성(山西省)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방관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시인으로서 자유로운 생애를 보냈는데요,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시 6수가 전하며, 당시의 그는 유행가의 작사가로도 유명했습니다. 그가 시 한 수를 지으면 악공(樂工)들이 서로 앞다투어 그 시에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왕지환이 당대에 얼마나 인기 있는 ‘히트곡 작사가’였는지 보여주는 아주 유명하고 흥미로운 일화도 전해지고 있는데요, 바로 ‘기치소전(旗亭畫壁)’이라는 주점 내기 이야기 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왕지환은 당대의 내노라하는 시인인 고적(高適), 왕창령(王昌齡)과 함께 술을 마시러 주점에 갔습니다. 마침 그 주점에서는 유명한 기생들이 풍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세 시인은 술기운이 오르자 흥미진진한 내기를 하나 걸게 됩니다.

“우리 중 누구의 시가 기생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지 내기를 해보세!”

첫 번째 기생이 노래를 불렀는데 왕창령의 시였고, 두 번째 기생이 부른 노래는 고적의 시였습니다. 왕창령과 고적이 신이 나서 벽에 손가락으로 획을 그으며 점수를 세는 동안, 아직 노래가 나오지 않은 왕지환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 기생들은 평범한 노래나 부르는 이들이라 그렇네. 진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최고의 기생이 부르는 노래를 지켜보세. 만약 그때도 내 시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가 평생 자네들을 형님으로 모시겠네.”

이윽고 주점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가 많았던 최고의 기생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곡이 바로 왕지환의 대표작인 <양주사(凉州詞)>였습니다.

왕지환은 크게 웃으며 “거 보게나, 내 말이 맞지 않나!” 하고 호방하게 외쳤고, 세 시인은 서로 배를 잡고 크게 웃으며 밤새도록 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당시 왕지환의 시가 대중적으로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화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마치며…

등관작루(登鸛雀樓)는 원래 유명한 시이지만, 예전 마오쩌둥 주석이나 장쩌민 주석 등 국가 주석들이 자주 애송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등관작루(登鸛雀樓) 서예작품을 선물하면서 매스컴에 많이 보도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국가 정상 간의 외교 무대에서도 등장할 만큼,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인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는 오늘날 하나의 고사성어나 명언처럼 전해지며 현대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는 일상적인 대화나 비즈니스 현장, 혹은 새해 덕담을 나눌 때 이 구절을 정말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요. 주로 학업이나 사업, 혹은 개인의 역량을 두고 “지금도 이미 훌륭한 경지에 올랐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한 단계 더 크게 도약하자”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할 때 쓰입니다.

단순히 “더 높은 곳으로 가라”는 성공 지향적인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노력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는 깊은 철학적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거나 중요한 시험, 사업을 앞두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구절을 인용해 격려의 인사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도 잘해왔으니, 다시 한 층 더 올라가 능력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뜻 깊은 응원이 될 것입니다.